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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 - 쉽지 않은 은밀한 사랑.

은시회 2007. 7. 27. 1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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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양 그곳은 대한민국이었다..


어느정도 개인중심적이고 타인에게 무례하며


그러면서도 타인에 대해 참견도 잘하고


어느 정도 따뜻한 마음이있는 곳,


교육이 중요하고 교회가 존재하며,


술과 노래문화가 존재하는 곳.







신애 ..... 너무나도 자신을 사랑하는 한 여자.


신애.. 그녀는 이 땅에 살아가고 있는 인간 그 자체였다.

주어진 현실을 인정하지 않고, 부정하며, 그러한 자신의 내면의
아픔을 감추기위해, 스스로에게 위안을 주기 위해, 본능적으로

거짓말을 하는 인간 그 본연의 모습.


한 사람이 저렇게 여러가지 상처들을 순간순간 겪을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을 해보았지만,
영화에서 신애라는 캐릭터를 통해 말하고자 하는 본질은

그 아픔과 상처들 속에서 스스로를
치유할 수 없는 오히려 자신의 치유를 위해

타인을 원망하거나 회피하고 자신을  속이는 거짓을 할 수 밖에 없는 연약한 인간 자체를 말하고 있는 듯 하다.


지렁이를 발견하고 극단적으로 놀라는 신애를 바라보면,

그러한 스스로를 향한 위로가
얼마나 쉽게 감추고 감춘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어낼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이러한 상황은 면회 장면 이후 극단적으로 묘사되어 진다.

영화 중반에서부터 종교를 통해 자신의 상처을 치유해가는

신애의 모습을 그리고 있지만.....

상처와 용서를 하겠다는 면회 장면의 상황들을 통해

인간이 가진 본질적인 상처와 복수 그리고 용서라는 감정들이

얼마나 쉽지 않은 그 무엇인지 생각하게 된다.


면회 사건 이후부터

신의 구원에서 자유할 수 없었던 신애의 모습들은
상처를 신에 대한 원망과 저항으로 나타내고 있다.


그래서 신애는 정신병자가 아니다.
그는 절대 신에 도전했을 뿐이다.

그 도전은 아이러니컬하게도 도전한다는 행위 자체가

신의 존재에 대한 절대성을 인정한다는 점이고
이러한 자아의 불일치는 점점 더 신애를 극단적으로

몰아갈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신애는.. 그러한 전면적인 도전앞에....
... 결국 자신을 잃을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자신의 머리카락을 짜르는 마지막 장면
그러한 자신을 용서 혹은 자유함을 찾겠다는 의지로
설명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감독은 말하고 있다..
그 바로 옆에서.. 찬란한 빛이 비추어지고 있음을...


종찬..  적당한 거리 속에 현실에 존재하는 자...........


그는 참 적당했다.

어느 정도 놀 줄도 알고, 사람들과 어울릴 줄 아는
그러면서 어느 선에서 봉사할 줄도 알고

타인에게 마음을 전달 할 줄 아는 그런 인물.


그는 적당했다.

이 사회를 살아가기 위해

아니 어느 정도의 행복을 잃지 않기 위해
아니, 고통이라는 단어 앞에 어느 정도 피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기 위해 '적당' 하다는 것을 사용할 줄 아는 사내였다.


그의 사랑도 그러했다.

과연 종찬은 신애를 사랑했는가? 라고 말한다면

무엇이라 정확하게 yes라 말하기가 어렵다.

보통 남녀간의 로맨스를 풀어가는 방식과는 남달랐기 때문이다.

무엇가 그가 신애를 사랑했다라는 절절한 로맨스적 사랑은 보여

지지 않는다. 늘 한발자국 뒤에서 적당히 자신의
삶 속에서 하나의 일상 중 해야할 일 중 하나 정도로...

신애에게 다가서고 있다.


여러 장면 속에서 그는 여성의 아픔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지도 끼어들지도 않았다.
오히려 신애가 적극적으로 한 남성의 보호가 필요할 때

그는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뿐이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그 어떠한 자기 희생을 보여주지 않았다.


신을 대하는 그의 모습 또한 그러했다.

.. 어느 선에서 예배를 드리고 어느 선에서.. 봉사를 했다.
봉사하는 상황에서도 늘 적당한 놀이와 편함을 찾고 있었다.


오히려, 뒷 장면에서 신애가 없이도 교회를 나가는 자신을
 "그냥 교회를 나가면 마음이 편해요." 라고 말하는데 그의

대사에 감사함을 느낄 정도였다.
 
그는 늘 ... 그랬다.

그리고 모든 것들로부터의 적당한 거리는 현실을 살아가는

그에게 가장 현실적으로 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지도 모른다.


밀양은....


... 그렇게 현실과 절대적인 것을 부정하고 저항하는

현실적이지 못한 한 여성과

... 그렇게 현실과 절대적인 것으로부터

자신을 존재시킬 줄 아는 한 남성의 이야기이다.


아! 그리고, 그들과 함께 늘 존재하는 신에 대한 이야기.....



본 영화는 기독교적인가? 아닌가?


한 사람의 인생을 이렇게 교묘하고 철저하게 부정적인 상황으로
몰아갈 수 있을까? .... 그러면서도 사랑이라 외칠 수 있을까?


감독은 있다라고 말하고 있는듯 하다.

... 영화가 끝난 후 잠시 앉아 있는 동안에..
이건 픽션이고 상황과 설정을 구성한 시나리오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다라고 생각을 했다.

또한 반기독교적이다 기독교적이다라는 점을 떠나
이건 그냥 종교라는 상징을 위해 기독교를 배치시켰다고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극장에서 나오는면서 밀양의 포스터를 보며 ....
이창동 감독 영화를 보면 느낄 수 있는

편히 웃을 수 없는 웃음을 짓고야 말았다.


"이런 사랑도 있다."


....  블랙 코미디..

절대적인 신의 존재와 개입은.. 인정하지만
인간 스스로가 현실 속에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극히 인간적이고 현실적인 생각 앞에
그 행복을 다 실현시켜주지 않는
하나님의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물음을 블랙 유머로 던진 것이다.


.... 그러다보니.. 감독이.. 이 영화를 통해
신애를 통해 본인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회적인 아픔들에 대한 영화를 주요 소제로 삼아왔던..
이창동 감독..

그 사이에.. 문화관광부 장관이라는 역활을
통해 사회 중심에서 여러가지 상황을 바라보고 경험하고
고민했던 감독이 신의 사랑을 인간 입장에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독은 언제나 햇빛이 비취는....

그러한 여지를 남기는 신에 대한 사랑을
편치 않는(우린 결국 인간이기에) 웃음과 함께

보는이에게 던진 것 같다.


여지...


영화에서는 결론의 여지를 두가지 방식으로 표현했다.


그 첫번째는 소통이다.

영화에서는

신애가 병원에서 퇴원하고 나서부터

그가 다시 사회라는 공간 속에서
돌아오면서 그는 여러 소통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미용실에서 자신의 아들을 죽인 범죄자의 딸과 대화를 통해
소통했으며(그 이후의 신애의 반응을 난 그 딸과 대화를 통해
느끼게 된 아픔에 대한 충격의 표현이지 이전에 나타난
증오의 표현이라 생각치는 않는다.)


바로 옆 옷가게의 변화와 집 주인과 신애와의 대화이다.

그 대화속에서 편히 던지는 농과 실없는 웃음..

아무 의미도 없을지 모르는 나눔과 웃음이었지만,

의미있는 웃음이라 말하는 그 어떤 것보다

훨씬 더 정겹고 따뜻한 그래서 의미 있는 장면이었다.


물론 종찬과의 소통도 있다.


... 극단적인 상황 가운데에서도 주변에 나눔을 가질 수 있는 여지.


생명이라는 삶 자체와 공동체라는 공간만이 줄 수 있는

소통의 여지이다.


두번째는 빛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치는 햇볕이다.

물론 난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그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물론 영화에서는 이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할

 수 없음에 대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영화 결말부분에서 신애의 어떠한 행동을 통해서도

하나님과 인간의 소통을 통해 들어내고 있지는 않지만, 

감독은 음과 양 즉 햋빛이 비추는 곳과 아닌 곳을 통해

신에 대한 절대적 사랑(관심)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구지 카메라를 돌리는 수고까지 하면서...

마지막 장면을 만들어냈다.

(개인적으로 그 부분이 이 영화에서 재일 재미있었던 장면이었다. 정말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닌가...)


상황이 어쩌다 저쩌다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은 비추고 있었다.....

신애가 바라보지 못할 뿐......




영화 속 밀양이라는 도시와..

현재 내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땅..
다른 것은 무엇이 있을까?


극단적으로 묘사하기는 했지만

신애라는 한 여성과 종찬이라는 한 남성.

이 땅에서 경제적, 사회적 환경속에서
고통을 호소하고 그 누군가를 원망하며..
나름데로 그 삶 가운데에 자신을 재포장하는 우리와 다른 것은
무엇이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 우리가 인지하든 인지하지 못하든..
항상 빛은 우리 곁에.. 존재하여 비추어지고 있다......


"이런 사랑도 있다."

....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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